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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웨딩드레스. 한복) 결혼식때 입는 옷

보석공주 2006. 7. 12. 22:14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예(禮)를 중시하여 관혼상제와 대소 연회(宴會) 때 의식을 갖추기 위해 여러 가지의 예복을 입었다.

 

같은 예복이라도 신분이나 계급 등에 따라 달랐다.

조선시대 예복으로서 제복(祭服)·조복(朝服)·공복(公服)·상복(常服)·융복(戎服) 등은 왕과 문무관리들이 입었다.

 

여자 예복은 적의(翟衣)·원삼(圓杉)·대삼(大杉)·활옷·당의(唐衣)가 있다. 후기에 와서는 의복의 간소화로 대례복·소례복·상복(常服)으로 나누어진다.

 

 대례복은 수책(受冊)·납비(納妃)·종묘사직(宗廟社稷)·정조(正朝)·동지(冬至)의 큰 의식에서 입었으며, 소례복은 진현(進見)할 때나 공식적인 연회 때 입었다.

 

갑오개혁 이후는 단발령과 관복의 간소화로 양복이 등장했다. 1900년(광무 4)에는 구미식 문관 복장을 제정하여 대례복은 영국 궁중예복을 본떴고,

 

소례복은 유럽의 시민예복인 연미복(燕尾服), 프록 코트를 입었으며 상복은 시민평복인 신사복을 입었다.

당시 일부 상류층에서는 양장을 입기도 했지만 관혼상제에서는 여전히 구습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 생활에 적용된 것은 혼례복이었다.

 

신식 혼례가 보급됨에 따라 신랑은 연미복, 신부는 웨딩드레스에 하얀 면사포를 썼다.

 

그러나 폐백만큼은 옛 그대로 신랑은 사모관대, 신부는 원삼·활옷에 족두리·화관을 썼다.

 

상례는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어 장례와 복(服)을 입는 기간이 단축되었다.

 

상주의 복장도 8·15해방 후에는 간편해져 평상적인 양복에 건(巾)과 완장을 두르고, 여자들은 흰색 치마저고리로 대신했다.

 

더욱이 그리스도교도들은 간단한 추모식 정도로 마치기 때문에 제례의 중요성은 날로 퇴색되어가고 있다.

 

관례는 오늘날 거의 사라진 반면, 부부동반의 각종 모임이 잦아 다양한 서구식 예복이 늘어나고 있으며, 대개의 예식에는 보통 한복 차림이 예복을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