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과 무상(無常)과 비아(非我) 그리고 진짜 나(我)
그리고 우리 중생은 모든 것을 있는 것으로 보는데,
불교에서는 있는 것으로 안 봐요. 공(空)으로 봐요.
여러분! 몇 십 년 전 친구의 소식을 들으니까 죽었다고 그래요.
없어졌잖아요.
공(空)으로 돌아가 버렸지요.
이 세상 목숨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것,
목숨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드러난 모든 것은 빠르고 늦고 한 것뿐이지
전부 없어져 버립니다.
공(空)으로 돌아가 버려. 없어져 가버려.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공(空)으로 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세상사를 무상(無常)으로 봐요.
여러분! 무상이라는 말을 깊이 새기십시오.
무상, 허망하다. 무엇이든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자꾸자꾸 변해 간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도 무상이라는 말이어요. 모든 것은 변한다.
허망하다. 이것입니다.
영어로는 그것을 진행형(ing)으로 보는 거요.
불교에서는 무엇이든지 물건․ 입자로 안 봐요.
전부 진행형으로, 사건으로 봐요.
전부를 사건으로 보지 고정된 어떤 실체로 안 봅니다.
무상으로 보는 거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무상으로 안 봐요.
오늘 잘 살거든요. 지금까지 잘 살았어. 항상 잘 살줄 알아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강도를 만났다든지, 자기자식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다든지 하면 그 기대감이 무너져 버려요.
무상으로, 항상 무상으로 세상을 달관하면서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이겨 낼 수가 있어요.
그런데 무상을 무상으로 안 보고, 이 세상은 무상인데
자기는 언제나 항상 있는 걸로 생각해 가지고 살기 때문에,
준비를 안 하고 살기 때문에,
거기에 충격을 받는 거요. 이 세상은 무상 한 거요.
그 다음, 불교에서는 나(我)라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이 몸뚱이도 나(我)가 아니다.
여러분! 나(我)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은 (몸뚱이는) 나(我)가 아니다’ 라고 보는 것이
불교의 견해입니다.
이것이 정견(正見)입니다.
이 몸뚱이도 나(我)가 아니어.
여러분, 조금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지요?
왜 나(我)가 아니라고 할까?
이것은(몸뚱이는) 100년 밖에 못 살아.
이 몸뚱이를 진짜 나(我)라고 하면,
이건 천년 만년이 아니라 영원히 불멸이라야 돼.
그런데 이 몸뚱이는 그렇잖아.
이 몸뚱이는 언젠가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어.
그래서 진짜 나(我)라고 하는 것이 아니어.
불교에서는 이 몸뚱이를 가짜 나(我)라고 그래.
우리 생각도 그래요. 우리 생각도 시시각각으로 변해요.
생각이 생각을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 생각이 1년․ 만년이 안 돼.
변하지. 변질돼버려. 그래서 우리 생각도 진짜 나(我)가 아닌 거요.
파초와 같아. 한 겹 벗겨 놓고 보면 진짜인 것 같아. 벗겨 놓고 보면 없어.
진짜 나(我)가 없다고 그래.
이 몸뚱이도 진짜 나(我)가 아니고, 이 생각도 진짜 나(我)가 아니고,
이것이 불교 이야기입니다.
진짜 나(我)가 뭣꼬?
일단 우리에게는 진짜 나(我)를 찾는 것이 정말 필요해요.
선불교는 이것이 목적이어요.
진아(眞我)를 찾는 것, 참 나(我)를 찾는 것, 이걸 목표로 해서 나갑니다.
진아․ 공․ 일원상 그거예요.
현지사에서는 그걸 찾았다 하더라도 공성(空性)을 증득해야 된다.
진짜로 더 수행을 해서 생사를 해탈 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 된다.
이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현지사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은 이제 시작이 되어가지고
○ 청정계율을 지키고
○ 무소유로
○ 두타행으로 나가야 착이 떨어지고 공성을 증득 하는 거요.
그래서 아라한이 되는 거요.
아라한이 되어가지고 이제 윤회에서 벗어 날수가 있는 거요.
현지사에서는 아라한이 된 그 성자한테도 더 공부해라. 그건 과정이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라한도 사람 몸을 받아 오면 또 퇴전 할 수도 있어.
그러기 때문에 더 공부해야 된다.
이제부터는 부처님의 타력을 의지해서 공부해야 된다.
그러니까 진짜로 이제부터는 칭명염불로 들어가라고 가르치는 거요.
그래서 더 공부를 해서 보살도(보살행)를 하고 수행을 하여
보살이 되는 거요.
여러분! 전부 거기다가(보살에다가) 목표를 두어야 된다 그거요.
거기다 목표를 두면 이제 영원히 삼계에서 탈출 할 수가 있는 거요.
보살의 자리는 영원히 삼계에서 탈출 할 수가 있어.
출처:2008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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